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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대사가 잡아준 묘터, 원주 운곡원천석묘역 * 운곡 원천석(1330∼?)선생의 묘로 2000년 11월 18일 강원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선생의 묘역 내에는 봉분 앞에 모비와 제사음식을 차려 놓을 수 있는 상석(床石)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신도비가 있는 소박한 형태이다.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치악산 산자락에 있는 원천석의 묘 앞에는 `고려국자진사원천석지묘(高麗國子進士元天錫之墓)`라 새겨진 묘비와 상석이 놓여 있고, 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1670년(현종 11)에 세운 묘갈이 있다.
원천석의 유언에 따라 본래 표석을 세우지 않았다가 4대가 지난 후에 묘표가 세워졌다 하는데 묘갈의 글과 전서(篆書)는 조선 중기의 학자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이 짓고 썼으며, 글씨는 이명은(李命殷)이 썼다.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원천석의 묘지는 무학대사가 잡아 주었다 한다.
묘역에는 1704년에 건립하고 1984년 개축한 재사(齋舍)인 모운재(慕耘齋)와 2006년 8월 31일 운곡대종회와 운곡학회에서 건립한 사당 창의사(彰義祠)가 있으며, 모운재 옆에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 운곡 원천석 선생에 대하여 * 원천석 선생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밝아 목은 이색 등과 함께 성리학의 보급에 큰 역할을 했으며 조선 태종의 어릴적 스승이기도 하였다.
고려말에 정치가 문란해지자 이를 개탄하면서 치악산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조선왕조가 들어서 선생에게 벼슬이 주어지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켜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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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 2013-03-04'작성하여 공공누리로 개방한 '한국관광공사_국문 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_국문 관광정보 서비스_GW : https://www.data.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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