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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씨 부인이라는 여인의 절개를 기리는 비 * 1984년 전라북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장수지방 화평마을에 살았던 양사무(梁思無)의 부인 해주오씨를 기리는 석비이다.
수열평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조선시대 중기의 오씨 부인이라는 여인의 절개를 기리고 있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장수지방에 침입하였던 왜적들이 집집마다 약탈을 하며 불을 지르기도 하면서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일이 잦았다.
화평 마을에 살고 있는 양사무의 부인 오씨부인은 아침에 들이닥친 왜적들에게 가슴을 잡히는 등 모욕을 당하게 되자, 자신의 가슴을 칼로 베어 그들의 얼굴에 뿌리면서 `u201C짐승만도 못한 오랑캐들아! 젖이 욕심나거든 이것을 들고 네 나라로 돌아가라`u201D며 크게 외쳤다.
부인의 위엄에 눌린 왜적들은 곧 달아나고, 피를 많이 흘린 부인은 그 자리에 쓰러져 운명하였다.
훗날 이러한 사연을 나라에 올려 아뢰니, 조정에서는 부인을 위한 비를 세우도록 명하였다.
*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 우의 글씨 * 비각안에 서 있는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구조로, 비몸의 윗변이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앞면에는 비의 이름을 길게 새기고, 뒷면에는 `수열평(樹烈坪)`이라 썼는데, 이때부터 화평이라는 마을 이름도 수열평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비문은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 우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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