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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 한성판윤 권홍과 그의 부인인 옹주 이씨의 원찰로서 창건되었다는 금강암. 조선 후기에도 금강암의 기록이 계속 나오므로 창건 이래 지금까지 법등이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금강암은 창건 당시의 금강암과는 다를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보령댐이 조성됨으로써 깊은 산 중에서 있었던 사찰이, 이제는 깊은 호수 주변에 위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강암은 도리어 호수 때문에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진 사찰일 것이다.
금강암을 찾기 위해 호숫길을 따라갈 때에는 반드시 절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만큼 보령호수는 아직 사람 때가 그다지 묻지 않아 아름답고, 그 맑고 깊은 호수를 바라보다 보면 벌써 두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게 된다.
이처럼 사찰이 생겼을 때에는 없었던 호수가 생기면서 고요하던 산사의 분위기를 새롭게 일신하고 있다.
차를 타고 이곳을 한 바퀴 둘러보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풍광이 펼쳐져 계속 이 길을 따라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보고 싶은 그곳에 금강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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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 2013-03-04'작성하여 공공누리로 개방한 '한국관광공사_국문 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_국문 관광정보 서비스_GW : https://www.data.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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