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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0년(효종 1) 지방유림의 공의로 충렬공 홍명구(洪命耉)의 절의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병자호란 때 당시 평안도관찰사였던 홍명구는 평양을 거쳐 서울로 침입한 적병을 추격하던 중, 금화에 이르러 지방의 의병들과 힘을 합하여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이에 주민들은 숭덕비를 세워 그의 충절을 기리고 명복을 빌어 왔으며, 1652년 `의열(義烈)`이라 사액되었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사우(祠宇)·강당·동재(東齋)·서재(西齋) 등이 있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그 뒤 충렬서원으로 개칭되었고,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존속되어 왔다.
6·25사변 때 이 지역이 격전장으로 되면서 소실, 현재는 세 개의 비석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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