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동궁과 월지 > 역사관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역사관광

사진 출처 : 한국관광공사 공공누리 제1유형, 제2유형, 제3유형, 제4유형 (무료다운로드 공공데이터포털(www.data.go.kr) / 한국관광공사 TourAPI홈페이지(api.visitkorea.or.kr))

페이지 정보

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1-11-30 00:00
경주 동궁과 월지
  • 분류 사적지
  • 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인왕동)
  • 전화번호 054-750-8655
  • 홈페이지 .
§ 위치정보 인근 관광지 click!!
§ 거리뷰
§ 상세정보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고려 태조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의 『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으며, 이 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 묵객들이 연못을 보며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 ``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며, 이 곳을 기러기 ``안``자와 오리``압``자를 써서 ``안압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후 1980년대 ``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며, 이 곳이 본래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의 ``월지``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 되어 ``안압지``라는 이름은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보상화(寶相華) 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월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본 사이트는 한국관광공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 2013-03-04'작성하여 공공누리로 개방한 '한국관광공사_국문 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사진(이미지)는 [공공누리 제1유형, 제2유형, 제3유형.제4유형]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_국문 관광정보 서비스_GW : https://www.data.go.kr/)(한국관광공사_관광사진 정보_GW https://www.data.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블로그 키워드 자동 검색 : 21,706
§ 인근 여행지 (반경 5km 범위내)
§ 근처 식당 (반경 5km 범위내)
§ 근처 숙소 (반경 5km 범위내)

댓글목록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사이트 정보

비영리 개인홈페이지
연락처 : wonderfulkoreatv@naver.com

접속자집계

오늘
1,451
어제
3,048
최대
5,343
전체
830,207
모바일버전
Copyright © 소유하신 도메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