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사는 장흥임씨의 시조 임호와 그의 아들 정경공 임의, 손자인 문숙공 임원숙, 문충공 임원후, 문헌공 임원준등 고려조에 공헌한 선조들의 위패를 봉안한 사우이다.
장흥군은 고려시대에는 정안현으로 영암군에 소속되었는데, 고려 제 17대 인종 왕비인 공예태후임씨의 탄신리라 하여 이름을 `장흥`으로 고치고 부로 승격시켰다.
지금의 장흥은 공예태후임씨에서 연유한 것이다.
임호는 중국 소흥부 출신으로 고려 정종 때 이곳에 정착, 개기하였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장흥이라 부른다.
그는 상서공부원외랑을 지내고 태자태부에 증직되었다.
한편 장흥임씨들의 기가에 커다란 역할을 한 분은 임호의 아들 임의였다.
그는 문종 24년에 과거에 급제하고 비서성교서랑을 초직으로 관계에 진출한 후 숙종 5년에 송나라 철종이 승하하자 조문사절로 다녀오면서 황제가 하사한 신의보구방이라는 의서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 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숙종 9년에 동지추밀원사를 제수 받아 재상의 반열에 올랐으며, 참지정사를 거쳐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고, 예종 4년에 권판상서이부사가 되어 수상을 지냈으며 여진족 정벌에 공헌하였다.
고려 좌리공신이 되었으며 시호는 `정경`이다.
임의는 아들 셋을 두었는데, 장자 임원숙은 중서시랑평장사가 되어 재상의 반열에 올랐고 시호는 `문숙`이며, 차자 임원후는 의종 1년에 문하시중이 되어 아버지 임의의 뒤를 이어 수상을 지냈고 시호는 `문충`이다.
계자 임원준 역시 중서시랑평장사가 되어 재상의 반열에 올랐으며 시호는 `문헌`이다.
또한, 임원후의 딸이 인종왕비가 되면서 가문은 더욱 빛나게 된다.
공예태후는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당동에서 태어나 인종 4년에 왕비가 되고 의종 1년에 왕태후가 되었으며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태후는 정중부, 이의방, 이의민 등 무인들이 날뛰던 난세에도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여 왕실을 굳건히 지켰으며, 의종, 명종, 신종등 아들 3형제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정안사는 장흥임씨 종친들의 헌 성금으로 1998년도에 건립하였다.
본 사이트는 한국관광공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 2013-03-04'작성하여 공공누리로 개방한 '한국관광공사_국문 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사진(이미지)는 [공공누리 제1유형, 제2유형, 제3유형.제4유형]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_국문 관광정보 서비스_GW : https://www.data.go.kr/)(한국관광공사_관광사진 정보_GW https://www.data.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