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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광 게시판 내 결과

  • 하점면 장정리에 소재한 이 불상은 두꺼운 판석 위에 조각된 고려시대의 석조여래입상이다. 전체적으로 장대하고 불신의 비례가 좋은 편이나 큰 얼굴, 좁은 어깨, 큰 손 등이 다소 균형감을 깨고 있다. 지금은 전각을 세우고 그안에 모시고 있다. 높이 2.8m의 마애불로 머리 위에 큼직한 육계가 솟아 있고 얼굴은 둥근편으로 입가부터 양쪽 볼과 눈매에 이르기까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다. 전체적으로 입상의 하반부는 간략하게 조각되어 있다. 얼굴표현, 법의 층단식처리, 광배, 화염문 등의 표현방법으로 보아 제작시기를 11세기 경으로 …

  • 강화성당은 고요한 (Chari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

  • 이 수문은 강화산성의 내성에 연결되어 강화읍을 통하여 흐르는 동락천을 가로지르는 수문으로서 조선 숙종 37년(1711)에 축조되었다.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홍예문으로 된 이 수문은 화강암으로 축조하였으며 길이는 18.2m, 높이 2.7m, 홍예의 높이는 1.7m, 폭은 3m이다. 1910년 갑곶리 선착장을 신설하고 그 옆 동락천 하구의 교량으로 사용하다 1977년 하수문 자리로 이축하였다가 1993년 동락천 복개공사로 인하여 상수문 자리로 이전 복원 되었던 것을 최근 서문으로 다시 이전,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회정선사가 창건하여 정수사(精修寺)라 했던 것을 조선 세종 5년(1423)에 함허대사가 중창하고 정수사(淨水寺)로 고쳤다. 특히 건물 후면 공포는 건축 당시의 세부 건축형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고, 1957년 보수공사 중에는 숙종 15년(1688) 수리 당시 세종 5년 에 중창되었음을 보여주는 상량문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마니산 동쪽에 자리잡은 정수사는 전등사, 보문사와 더불어 강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찰 중의 하나이다. 이 곳은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회정선사가 마니산의 참성단을 참배…

  • 강화군청에서 약 7km 떨어진 고려산(436m) 동쪽 기슭에 있다. 절 건립과 관련하여 오련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천축스님이 고려산 꼭대기에서 오련지(오색 연꽃이 피어있는 연못)를 발견하고 다섯송이의 연꽃을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마다 절을 세웠는데, 하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백련사, 파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청련사,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적석사, 노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황련사, 검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흑련사라고 하였다. 백련사 철제아미타불좌상이 1989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는…

  • 강화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구축한 요새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 초지진 설치에 대한 기사에 따르면 조선 효종 6년(1655)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 들과 맞서 싸운 곳으로 1871년에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이 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

  •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이라고 전한다. 제단은 돌로 하부는 둥글게, 그 위에 네모난 단을 쌓아 올렸다. 타원형의 하부는 13m*17.5m이며 지름은 8.7m이며, 네모난 단은 6.6m의 정방형이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보수하였으며, 조선 인조 17년(1639)에 수축하였고, 숙종26년(1700)에도 보수하였다. 지금은 해마다 개천절에 이곳에서 단군의 제사를 지내며, 한편 전국체육대회 때마다 대회장에 타오르는 성화가 이 참성단에서 7선녀에 의해 채화되어 대회장으로 봉송, 점화되고 있다. 특히 19…

  • 고려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는 외성의 요충으로서 원래 수영에 예속된 첨사의 진(鎭) 이었으며, 1677년 만호를 두고 군관 26명, 병 100명, 돈군 12명, 배 2척이 배치되었다. 1679년 축조된 용두, 덕진돈대 포좌 15문이 설치된 강화 제 1의 포대인 남장포대와 대포 10문이 설치된 덕진포대가 이 진에 소속되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 장군의 부대가 밤에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에 들어가 승리를 거두었고,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의 아시아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여 미국 함대에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 몽고 항쟁 39년간을 비롯, 조선 인조 때의 병자호란 및 정묘호란을 피했던 곳으로 개화기에는 프랑스, 미국의 함대가 넘나들었으며, 일본의 운요호가 침입해 강화도조약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서울 방위를 위한 중요한 국방요지이며,1977년 복원 및 보수작업을 마무리하여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 일괄 관람(5개소) - 갑곶돈대, 고려궁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 개별 관광 - 갑곶돈대, 고려궁지 ,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1) 진 - 지금 군의 연대와 대대 단위의 중간 2) 보 - 지금의 중대 단위 3) 돈…

  • 고려 제23대 고종(1213-1259)의 능인 홍릉은 사적으로 본래 3단의 축대로 석인, 왕릉 순으로 배치되었다. 원형 봉분 직경이 4m 정도로 작지만, 봉토에 호석이 있고, 1988년 재실이 신축, 복원되었다. 고종은 몽고군의 계속된 침입을 막아 내면서 고종 46년(1259)태자 전을 몽고에 보낸 후 그해에 승하하여 개경으로 옮기지 못하고 이곳에 안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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