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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광 게시판 내 결과

  •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인 고인돌은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오상리 고인돌은 1972년에 1기가 알려져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 이후에 자세한 보고는 없다가 1990년대 초에 『강화도 고인돌 무덤(지석묘) 조사연구』를 통해 고인돌이 있는 오상리 산 125번지 일대를 자…

  • 고려 고종 때 궁궐이 있었던 터에 위치하고 있는 이 건물은 조선중기 강화유수부 6방(六房)중 하나인 이방청(吏房廳) 건물이다. 팔작지붕에 민도리 홑처마 양식으로 된 현재의 건물이 건립된 것은 효종때로 유수 정세규(鄭世䂓)에 의해서 건축되었으며, 정조 7년(1783)에 유수 김노진(金魯鎭)에 의해 내부가 수리되고 괘홀당(掛笏堂)이라는 당호가 게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강화유수부 동헌은 오늘날 군청과 같은 기능을 담당했던 관아 건물. 이 건물은 강화유수부의 동헌으로 오늘날의 군청과 같은 관아 건물이다. 여러차례에 걸친 개조로 원형은 남아있지 않다. 조선 인조 16년(1638)에 유수 김신국이 개수하였고, 영조 45년(1769)에 유수 황경원이 현문관이라 명명 하였다. 현재는 명위헌과 이관당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당호는 당시의 명필이며 학자였던 백하 윤순(1680∼1741)의 필적이다.

  • 강화평화전망대는 2006년 말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던 양사면 철산리 민통선 북방지역 임야에 지하1층 지상4층 규모로 타 지역에선 전망하기 힘든 이북의 독특한 문화 생태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고 비교할 수 있도록 준공되어 2008년 9월 5일 개관하였다. 지하층과 4층은 군부대 전용시설이며, 1층에는 강화특산품과 북한의 특산물 등을 판매하는 토산품 판매장과 식당, 관리사무실, 통일염원소,휴게실 등이, 2층에는 고성능 망원경과 전쟁의 참상과 흔적을 볼 수 있는 전시실 이, 3층에는 이북의 온 산하가 한눈에 가까이 …

  • 강화도는 조선 후기에 들어와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 1866년 고종 3년에 병인양요가 일어나면서 프랑스 함대가 정족 산성 전투에서 패하여 철수할 때까지 1개월 정도 머물렀으며, 1871년 신미 양요 때에는 미국 함대가 초지진, 덕진진과 광성보를 차례로 함락시켰다. 이처럼 강화도는 19세기 말 우리 나라가 서양에 문호를 개방할 때 그 전진적 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고, 따라서 서양인들의 선교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이들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거나 그들의 영향에 의해 당시에 세워진 교회 중 지금까지 강화도에 남아있는 것…

  • 강화 선원사지는 1976년 동국대학교 강화도학술조사단이 강화도 일원에 대한 지표조사에서 처음 발견하였다. 발견 당시 이곳에서 몇 개의 주춧돌을 비롯하여 보상화무늬 전돌, 범자(梵字) 새긴 기와, 지붕에 얹었던 잡상들을 확인하고, 선원면(仙源面) 도감마을, 도감산에 있는 사지이므로 학술적·역사적으로 가치가 있어 지역의 연원을 기초하여 1977년에 사적 제259호 강화선원사지(江華仙源寺址)로 지정되었다. 동유적에 대하여 1996년부터 4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동국대학교박물관) 결과 건물터, 축대, 배수시설 유구와 연화문 기와, 금동…

  • 봉은사지 오층석탑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탑은 단층기단 위에 탑신부를 형성한 일반형 석탑이다. 탑 주위에 고려시대 사찰인 봉은사가 있었다 전하나 현재는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다. 봉은사는 개성에 있던 고려시대 국찰로 고종 19년(1232)에 수도를 강화도로 옮길때 함께 옮겨졌다. 발견 당시 주변에 흩어져 있던 석재를 1960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 기단 면석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어 있고, 갑석은 부연 없이 상(上)면에는 낮은 1단 괴임으로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에는 탑신, 옥개석 1석씩 되어 있으며, 옥개석 받…

  • 하점면 장정리에 소재한 이 불상은 두꺼운 판석 위에 조각된 고려시대의 석조여래입상이다. 전체적으로 장대하고 불신의 비례가 좋은 편이나 큰 얼굴, 좁은 어깨, 큰 손 등이 다소 균형감을 깨고 있다. 지금은 전각을 세우고 그안에 모시고 있다. 높이 2.8m의 마애불로 머리 위에 큼직한 육계가 솟아 있고 얼굴은 둥근편으로 입가부터 양쪽 볼과 눈매에 이르기까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다. 전체적으로 입상의 하반부는 간략하게 조각되어 있다. 얼굴표현, 법의 층단식처리, 광배, 화염문 등의 표현방법으로 보아 제작시기를 11세기 경으로 …

  • 강화성당은 고요한 (Chari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

  • 이 수문은 강화산성의 내성에 연결되어 강화읍을 통하여 흐르는 동락천을 가로지르는 수문으로서 조선 숙종 37년(1711)에 축조되었다.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홍예문으로 된 이 수문은 화강암으로 축조하였으며 길이는 18.2m, 높이 2.7m, 홍예의 높이는 1.7m, 폭은 3m이다. 1910년 갑곶리 선착장을 신설하고 그 옆 동락천 하구의 교량으로 사용하다 1977년 하수문 자리로 이축하였다가 1993년 동락천 복개공사로 인하여 상수문 자리로 이전 복원 되었던 것을 최근 서문으로 다시 이전,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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